지난 10월 31일, 휴먼인러브는 정신지체장애학교인 정진학교, 베드로학교를 통해 숲 체험을 신청한 지적장애 청소년 19명과 중고등학생을 비롯한 봉사자25명과 함께 복권기금에서 후원하고 대학산악연맹과 함께 하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장애인 숲 체험’을 실시했습니다.
:: 정신지체 장애인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학생들
이날의 코스는 북한산 둘레길. 참가자들은 픽업장소인 대림역과 영등포, 구파발역으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였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의욕에 차있었고, 어떤 학생은 얼굴에 졸음이 가득했고, 어떤 학생은 스마트폰 게임에 푹 빠져있기도 하는 등 봉사자들의 모습은 제각각 이었는데, 공통적인 부분은 대부분 정신지체 장애인을 가까이서 접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애 청소년들은 부모님과 동행하여 픽업장소로 왔습니다. 부모님들은 인솔 직원에게 자녀의 특징을 거듭 설명해주시기도 하고 버스의 문이 닫히고 출발할 때까지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드시기도 했습니다. 가는 버스 안에서는 성별과 장애 정도, 체격에 따라 산행을 함께할 파트너가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심한 자폐장애가 있는 인혁(가명 17세)이가 낯선 사람들 때문에 겁을 먹었는지 몸을 떨며 소리를 지르고 버스 의자의 등위에 꽉 매달려서 도통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었고 의자에 앉혀보려 타이르기도 하고 힘을 써보기도 했지만 제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버스 안의 다른 장애 청소년들도 불안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봉사자들도 적지 않게 놀란 표정들이었습니다.
긴급하게 자원봉사 파트너를 조정하여 체격이 있는 송진우 학생과 침착해 보이는 김영재 학생에게 인혁이를 부탁하였습니다. 두 학생은 인혁이가 최대한 놀라지 않도록 침착하게 인혁이의 손과 몸을 잡고 의자에서 내렸고 함께 동행해주신 다른 장애아동의 어머니께서 인혁이를 달래며 진정시켜주셨습니다.
::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장애 행동 특징과 의사소통 방법
장애 청소년과 봉사자가 1:1 혹은 1:2로 짝을 맺었지만 버스에서 내리자 버스 안의 상황과는 또 달라졌습니다. 19명의 장애 청소년들의 장애 행동이 모두 제각각 이었고 통솔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당황하는 표정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한 친구는 산길 옆에 세워진 차량의 열려있는 문들을 모두 쾅쾅 닫기 시작했고 한 친구는 화단 속으로 들어가고 인혁이는 주저 앉고 덩치가 제일 큰 친구는 산책로 옆에 있는 운동기구를 잡고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매끄럽지 않은 출발, 우리는 조금 걷다 기다리다를 반복하며 걸어야 했습니다.
이날의 코스는 북한산 내시묘역길 둘레길 구간(3.5km)으로 경사가 거의 없는 쉬운 코스였습니다. 우리는 수려한 북한산의 산세를 바라보며 단풍이 물들어 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외길인 둘레길은 서로를 더욱 가깝게 해주었습니다. 손을 잡거나 팔장을 끼고 봉사자들과 장애 청소년들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자폐장애의 경우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서 타인과 눈을 맞추거나 의사소통 하는 것이 힘들고 같은 행동이나 말을 반복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하는 말이나 행동을 통해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데요. 이날 바나나킥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도통 잘 움직이지 않던 장애 청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바나나킥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가 “나도 바나나킥을 좋아해요. 우리 저기만큼 가서 바나나킥을 먹어요.” 라고 했을 때 그 친구는 비로소 발걸음을 움직였습니다.
한편 자신보다 4살 더 많은 장애 청소년과 짝이었던 중학생 허혁군의 활동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장애 청소년 정민(가명 18세)이가 시작부터 끝까지 엄마를 찾을 때마다 허혁군은 그 말에 짜증을 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한결 같은 태도로 자근자근 조근조근하게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형, 이 길을 다가면 엄마를 만날 거야. 갈 수 있겠지?”, “엄마도 형이 밥을 잘 먹고 오길 바라실 거야. ” 그 덕분에 정민이는 심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코스를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코스 절반쯤이 지나고 서로에게 익숙해졌을 때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파트너끼리 인증샷을 찍어서 내심 걱정하고 계실 장애 청소년의 부모님께 보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 인식이 변하는 이유 있는 동행
”저는 두 시간 정도 최선을 다 하면 됐었지만 가족들은 항상 인혁이를 돌봐야 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은 정말 가족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활동이 퍼져 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면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것 같아요.
(자원봉사자 송진우군)
”처음에는 저희를 보고 낯설었는지 버스에서 의자 위에 올라가거나 신발을 던지는 돌발행동을 했었고 제가 다칠까봐 걱정도 됐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 어깨동무도 하고 손도 잡고, 인혁이가 웃는 모습도 보게 되고… 점점 친해지면서 착한 친구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마치 제 동생 같아졌어요. 인혁이가 장애 때문에 편견을 많이 받았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자원봉사자 김영재군)
어느덧 버스가 처음 픽업했던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내리고 장애 청소년의 부모님들이 버스에서 자녀들을 찾아 데리고 가셨습니다. 한 아버지께서 자녀를 발견하시고 “우리 이쁜 아들 여기 있었네~.” 하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 장애인 청소년은 이날 일정 중에서 보조하기가 힘들었던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저 친구도 부모님께 사랑 받는 귀한 자녀이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게 되었습니다.
장애에 대해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고 당황하거나, 크게 놀라거나, 경계하거나,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장애인들도 그런 반응을 겪으면 불편하고, 불안감에 싸이거나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 이상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이번과 같은 활동을 통해 먼저 손 내밀고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순간 나의 편견에는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편견 없이 장애인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가족과 친구들, 주변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