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5일 12시, 진도 7.9의 강진이 네팔을 강타했다. 참혹한 지진피해소식이 긴급 타전되었고 UN은 전세계에 구조팀 파견을 요청했다. 휴먼인러브(이사장 김영후)와 드론프레스(대표 오승환)는 긴급구조팀을 꾸려 4월 28일 네팔로 향했다.
[ 네팔 대지진 당시 휴먼인러브 긴급구조단이 투입되었던 카트만두 공가부지역의 현재 모습 ]
2년 전 우리는 오만의 국립 구조팀과 카트만두 공가부 지역에서 구조활동을 했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현장, 무너졌던 7층 건물은 철거되어 1층짜리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가게와 이발소가 오가는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 2년 전 네팔 대지진 당시 휴먼인러브 긴급구조단이 공가부지역의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활동을 펼쳤었다. ]
[ 새로 지어진 1층 가건물, 지진의 아픔은 점점 치유되고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
도저히 새로운 삶이 시작되지 않을 것 같았던 그곳에는 외국에 나가 일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젊은 네팔인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맞이 하기 위한 게스트 하우스와 가게들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 다닌다. 낯선 외국인의 등장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2년전 대지진 당시 이곳에서 구조활동을 했었다고 설명하니 수크 바하두르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이 바로 옆 건물 2층으로 데려 간다. 대지진 당시 한국과 오만팀이 활동한 것을 기억한다며 왜 다시 왔는지 묻는다. 대지진 이후의 모습이 궁금해서 현장을 돌아보기 위해 왔다고 하니 놀란다.
[ 1층 가건물에는 작은 상점과 이발소가 들어섰다. 손님을 맞이 하고 있는 다하르마 라즈씨. ]
수크 바하두르씨는 대지진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모든 것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지 않고 다시 이곳을 찾아줘서 너무 고맙다며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줄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다면서 ‘커피 한잔’을 내어 주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멀리 한국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작은 도움을 주고자 했던 우리의 노력이 네팔인들의 새로운 출발에 작은 밑거름이라도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을 텐데 뜨거운 마음이 담긴 ‘커피’을 주시니 이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 한국에서 찾아온 낯선 이에게 내어준 내어준 커피 한잔, 너무나 큰 선물이었다. ]
꼭 2년 만에 다시 찾은 카트만두는 온 도시가 먼지로 덮혀 있다.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도시 전체가 2년간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도로복구가 늦어져 대로변은 오가는 차량과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먼지로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다.
[ 카트만두 공가부지역은 해외에 일하기 위해 도시로 모여든 네팔인들의 숙소가 집결된 지역이다. ]
카트만두 중심지의 건물들은 어느 정도 보강과 신축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그나마 카트만두가 수도이기 때문에 이 정도 복구가 되었지만 대지진 당시 진앙지와 가까워 가장 피해가 컸던 신두팔촉 지역은 아직 지진 피해 복구가 거의 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카트만두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라미찬씨는 ‘전체적으로 20% 정도 복구 되었는데, 이것도 국가의 지원이 아니라 국민들이 생존을 위해 겨우 겨우 복구에 나서고 있다’며 ‘완전한 피해 복구를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 대지진으로 무너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파탄 궁전의 모습. 현재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
[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은 파탄궁의 유적. 하지만 카트만두에 있는 대부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지난 대지진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
무너진 삶의 터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국가와 네팔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분명하다. 하지만 2년전 네팔 대지진 당시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세계인들의 관심과 지원은 그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믿는다. 카트만두를 떠나는 아침, 저 멀리 붉은 해가 떠오른다. 인간의 한계을 향한 도전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히말라야의 땅, 네팔이 마침내 이 시련을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나마스테 네팔!